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드웨이 해전 (문단 편집) === 미드웨이, 그리고 하와이 상륙전이 벌어졌다면? === 미드웨이는 철저히 준비되고 있었던 만큼 별다른 소득이 없었을 확률이 높다. 애초에 일본군의 작전이 제대로 성공하기 위해선 '''공격목표가 미드웨이라는 것을 들키지 말았어야 했었다'''. 들켜버린 이상 작전 당시 어떠한 상황이 전개되었든, 일본군은 미드웨이에 발을 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라는게 정론이다. 미군 수뇌부는 해전 3개월 전부터 심혈을 기울여 그 작은 미드웨이섬을 요새화시킨 상태였고, 그 결과 해전 당시의 방어 태세는 약 4000여 명의 병력이 견고한 [[콘크리트]] [[벙커]]와 참호에 의지한 채 각종 [[지뢰]], [[철조망]], [[기관총]], [[박격포]], 야포, [[해안포]], 그리고 여러 대의 [[전차]]까지 완전 중무장한 상태로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력이 부실하기 짝이 없는 [[대발동정]]에서 내려 가슴 깊이의 바닷물을 무려 '''180~400m'''나 헤치고 해안까지 걸어가야 했던 일본군의 머리 위에 쏟아지도록 준비되어 있었으니 상륙 병력은 아마도 그대로 다 물고기 밥이 되었을 것이다. 일본군 함대에서 지원폭격/포격을 한다 해도 별 도움이 안 되었을 것이 자명한데, 그 때에는 일본군은 물론 심지어 미군조차 요새화된 환초 상륙전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을 때이기 때문이다. 미군도 피를 대가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야 이에 대한 노하우[* 일례를 들면, 고폭탄으로 포격/폭격하는 것은 강화콘크리트 진지를 무력화시키지 못한다. 중순양상 이상급 함포의 철갑탄이나 전투기의 로켓탄으로 직격시켜야 하며, 심지어 그것조차 확실하게 제압하려면 탄약이 내려 꽂히는 각도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 밖에 다양한 상륙부대/상륙정의 발진 순서와 진형, 1차 보급품 양륙의 순서 등 세세히 따지고 들어가면 수도 없이 많은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것이 상륙전이다.][* 그리고 [[세바스토폴 공방전]], [[과달카날 전투]]에서 공고의 포격, [[타라와 전투]]에서 처럼. 방어측 보병이 작정하고 호를 파고 버티면, 전함이나 [[구스타프 열차포|구스타프]]가 아무리 포를 쏴도 박멸할 수가 없다.]를 정립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하면, '''당시의 미드웨이보다도 방어력이 약간 떨어졌던 곳이 다름아닌 [[타라와 전투|타라와]]'''였다. 미드웨이 해전 당시 일본군의 지원능력과는 비교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빵빵한 지원함, 상륙장비, 무기, 병력([[해병대]] 1개 사단), 지원포격, 폭격을 어마어마하게 때려 박았음에도 불구하고, 요새화된 일본군 방어병력 '''2,000여 명[* 게다가 언제고 미군에 붙을 가능성이 있던 조선인노동자 1천명까지 있었다!]을 상대로 미군은 질 뻔 했다.''' [[타라와 전투]]는 상륙전이 얼마나 어려운 작전인지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전투이기도 하다.[* 고대로부터의 전쟁사를 따져봐도 그렇지만 상륙전이나 공성전, 요새전 같은 전투의 경우 방어측이 훨씬 유리하다.] 하물며 장비도, 훈련도, 지원도 당시의 미군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빈약했던 3,000여 명 남짓한 일본군 육전대 병력이 미드웨이에 상륙전을 걸었다면?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쑹 전투|철저하게 궤멸]]당했을 것이 확실하다. 물론 보급을 장기 차단하고 지속적으로 타격을 가하며 계속 상륙을 시도하면 어쨌든 결국 점령할 수는 있었겠지만 [[코딱지]]만한 미드웨이섬 하나에 그렇게 오래 전력을 투자하며 지체한다면 전체적으로는 훨씬 큰 손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일본]](을 비롯한 [[영국]], [[소련]] 등 거의 모든 국가들)의 한계이기도 했다. 필요한 섬은 확실하게 자원을 효율적으로 때려 박아 빼앗아 버리고 그렇지 않은 섬은 무시하고 지나쳐 버리는 짓거리를, 그것도 그 넓은 태평양 전체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수십 수백 번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오로지 [[미국]]뿐이다. 그렇다면 미드웨이가 아니라 하와이를 공격했다면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1945년의 미군'이 '1942년의 하와이'에 총력을 기울여 상륙전을 시도한다고 해도 한 번에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고도로 요새화된 섬이 바로 하와이였다.[* 어느 정도인지를 다시 보여주는 말이 있는데, '''2000년의 미군이 1945년의 하와이를 상대로 24시간 내에 함락을 장담하지 못한다.''' 미사일, 제트전투기, 컴퓨터 등 기술력 격차가 60년이 나는데도 그걸로 하와이의 돌아버릴 지경의 방어시설을 24시간 안에는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https://blog.naver.com/imkcs0425/60094734812|#참고자료]] 상륙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하와이보다는 차라리 '''[[샌프란시스코]]에 상륙하는 게 더 현실성이 있을 것'''이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니, 일본이 하와이를 점령할 수 있는 가능성은 완전히 없다.[*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군은 7개월간 하와이를 강화할 시간이 주어졌다. 그 결과 1942년 4월 기준으로 미군은 62,700명의 육군, 8,900명의 육군항공군, 2만명의 해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예비군과 해안경비대를 합치면 총 병력은 약 10만명이다. 여기에 수백대의 전차와 275대의 항공기(이후 350대까지 증원)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벙커, 기뢰, 야포, 콘크리트 요새 등 방어시설이 엄청나게 설치되어 있었다. 당시 일본 해군은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을때 최대 6만의 병력을 상륙시킬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보급은 하와이에서 6,500km 떨어진 일본 본토에서 가져와야 하는데, 6만으로 10만이 방어하는 완전 요새화된 섬에 상륙전을 벌인다? 어찌될지는 아무리 바보라도 알 수 있는 노릇이다. 이것도 미국 해군이 전멸해서 일본군이 상륙을 방해받지 않고 시도할 수 는 있다는 상상에서의 이야기다.] 미드웨이 전투 시점에서 하와이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력은 10만명이 넘었지만, 이미 미군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와이를 고수한다고 결정한 상태였다. 필요하기만 하다면, 그렇게 해서 하와이를 지킬 수 있기만 하다면 미군은 진주만과 그 외곽의 방어시설을 대대적으로 증설하는 것은 물론 주둔병력을 20만이건 30만이건, 그 이상까지도 증원할 각오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https://m.blog.naver.com/imkcs0425/60152181591|참조자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